역사속의 상제문화 (애국가, 심청전, 원구단)

 

 

 

 

 

 

 대한제국이 공식 제정 선포했던 [대한제국 애국가]와 상제문화

KBS는 지난 2000년 3월 8일 [KBS수요기획 -부르지 못한 노래 ,대한제국 애국가]를 방송하였습니다. 이 최초의 애국가는 1902년 8월 15일 대한제국의 '국가'로 공식 제정되었었습니다 [증보문헌비고]와 [알렌 연표(0884-1905)]등의 사료등을 통해, 이 애국가가 50여개국의 각 외국공사에 배포되었으며 그 보다 앞선 1901년 9월 7일 덕수궁에서 열렸던 고종황제 탄신 축하연에서 34마디의 이곡이 처음 연주되었다는 기록을 찾아볼수 있습니다.

또 한국정신 문화원에서 발간한 [한국민족 문화대백과사전]에 의하면, 1904년부터는 각급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일의정서가 체결되고 통감부시대로 들어가면서 대중화되기에는 이미 불가능했다고 중앙대 음대 노동은 교수는 위 방송을 통해서 증언하였습니다.

'대한제국'은 1897년 8월 12일부터 1910년 10월 22일까지 불과 십년 남짓 단명했던 조선왕조의 국명이죠 ,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 당시에 몰려드는 서양열강의 세력앞에서 우리나라의 국운은 풍전등화와 같았고 러시아, 일본등 세계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국가가 어떻게 해체 되어 버릴지 알 수 없는 위급한 상황, 이러한 정세하에서 국가적인 사업으로 추진했었던 '애국가 제정'은 대한제국이 독립국으로 살아남고자 애썼던 역사적 근거중의 하나입니다.

1904년 5월 13일 황성신문에 실린 애국가의 가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 상제(上帝)난 우리 황상을 도우소서
  • 성수무강하샤 해옥주를 산갓치 사으소서
  • 위권을 환영(천하란 뜻)에 떨치샤
  • 어천만세에 복록이 무궁케 하쇼셔
  • 상제(上帝)난 우리 황제를 도으소셔  = [자료참조 : [한국문화대백과사전]제 14권 '애국가'항목]

이 대한제국 애국가를 가만히 읽어보면 한치를 내다볼 수 없는 당시 민족적 상황속에서 한많은 우리 백성들은 나라를 위하는 간절한 염원이 그대로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당시의 '애국가'는 우주의 절대자 하나님인 옥황상제님에게 우리 한민족의 국운을 보살펴달라는 간절한 기도문 그 자체였던 것이죠

역대 [애국가]속에서 불리어진 상제님

지금 대한민국 국가로 불리는 <애국가>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에 안익태가 작곡한 것인데 , 놀랍게도 현재의 애국가와 똑같은 가사가 <최신창가집>(1914년 만주 광성학교 발간, 일본 외교사료관 보관)에 실려있습니다. 이와 같이 애국가는 구한말부터 불리어오면서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기에 , 작사자 미상의 전국민의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가사의 변천에 유의하여 살펴보면 참으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수가 있습니다.

원래 애국가란 '나라를 사랑하는 노래'라는 뜻인데요 애국가가 '국가'로 공식 제정되기 이전에 갑오경장 이후부터 수백 종류의 애국가가 도처에 불렸다고 합니다. 1896년부터 [독립신문]이 나라사랑운동의 일환으로 애국가 제정운동을 벌였기 때문입니다. 그중 1896년 독립신문 정초식에서 불린 애국가(곡은 스코틀랜드 민요 Auld lang syne )악보를 보면 애국가의 큰 틀은 예나 지금이나 대동소이함을 알 수 있습니다.

'상제님께서 우리나라의 국운과 우리 황실의 안전을 보장해달라'는 발원문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또 그로부터 3년뒤 1898년 독립협회 개국기원 506돌 경축식에서 부른 애국가(곡은 영국국가 God save the king )역시 내용은 다르지만 '높으신 상제님, 자비론 상제님'하여 영어의 God에 비견되는 최고신, 절대신의 의미에 상제님이라는 용어가 쓰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현재 불리고 잇는 안익태 작곡 애국가는 해방후, 서양문물과 변화된 사회인식의 영향으로 '상제님'이 '하느님'으로 바뀐 것이라 확신을 할수있습니다

예로부터 상제님은 우주절대자로서 한민족의 민족정서에 면면히 살아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애국가만 보더라도 상제님의 조화권능에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전적으로 맡기고 그 뜻에 따르려고 하는 의지와 기대, 희망섞인 바램이 나타나 있는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민족정서였습니다

심청전과 상제님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효(孝)의 상징처럼 전해 내려오는 '심청이'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졌을 때 심청이를 구해준 그 분'이 누군인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십중팔구의 사람들은 '용왕'이 아니냐고 반문할 것입니다.

그러나 심청전 책을 다시 펼쳐보면, 당신은 거기에서 '상제(上帝)님' 이라는 분을 새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심청이를 살린 분은 바닷속 '용왕'이 아니라, 심청의 효심을 하늘에서 지켜보신 자애로우신 '상제님'입니다.

하늘의 상제님께서 바닷속의 용왕에게 '어느날 심청이가 인당수로 뛰어들 것이니, 심청이를 구해 극진히 보살피라'고 명을 내려, 심청을 살려낸 것입니다.

  • 그때의 심청이는 이 세상에서 꼭 죽은줄 알고 있으련만은이러한 출천지(出天地) 대효(大孝)를 어찌 하나님이 그저 둘 리가 있겠느냐. 옥황상제(玉皇上帝)께서, 사해용왕(四海龍王)을 불러, 하교(下敎)하시되, 오늘 무릉촌(武陵 村), 심학규(沈學奎) 딸, 심청이가, 인당수에 들터이니, 착실히 모셔드려라. 용왕이 수명(受命)하고, 심소저를 환수(還收)할제. 시녀를 불러 드려, 오늘 묘시초(卯時初)에 심소저가 인당수에 들터이니 백옥교(白玉轎)에 착실히 모 셔드려라. 시녀 분부듣고, 인당수에 내다르니, 심낭자, 물에 들거늘, 부왕의 분부듣고, 심낭자를, 모시러 왔사오니 어서 옥교(玉轎)에 오르옵소서. 심소저 이말 듣더니. 어찌 미천한 사람으로 옥교(玉轎)를, 타오릿까. 만일에, 타지 않으시면 중죄(重罪)를 내리실테니, 사양치 마옵소서. 심낭자 마지못해, 그 백옥교(白玉轎)를 타고 수궁(水宮)을 들어오는데. (중략)

상제(上帝)님...!! 우리 민족이 오래 전부터 하느님, 우주의 통치자로 믿어왔던 분, 그분이 바로 '상제님' 이십니다.

2002년 6/21일 원구단에서 105년만에 천제올림(KBS뉴스)

6월 20일 오후 소공동 사적 제157호 원구단에서 조선호텔과 한국방문의해추진위원회 공동주관으로 2002한일월드컵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기원하는 천신제가 열리고 있다.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동 87-1번지 , 조선호텔 앞에서 사적 제 157호로 지정된 조선시대 제단 유적이 고색창연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곳의 남쪽 즉 지금의 조선호텔자리에 둥근단을 만들고 고종이 하늘의 황천상제께 천제를 올리며 황제즉위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원구단은 중국과의 사대관계를 청산하고 대한제국의 국호를 온누리에 선포한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 서있는데, 그러나 이도 잠시 1910년 우리나라를 병탄한 일제가 이 역사적 장소를 가만 둘리가 없었습니다. 1913년 4월 원구단을 헐고 그자리에 조선철도호텔을 지었습니다. 지금남아있는 축조물은 1899년 신위판을 봉안하기 위해 축조한 원구단의 부속건물입니다. 그 옆에는 1902년 고종즉위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석고 단 (돌북) 3개가 한쪽에서 영욕의 세월을 지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