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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도전속인물탐구] 성도열전_인간으로 오신 하느님을 가장 먼저 모신 백복남 성도 
 노상균 (증산도 본부)
 


 


 상제님을 맨 처음 수종 든 백복남 성도
 인간으로 오신 하느님을 모신 성도들 중에서 가장 먼저 상제님을 모신 분은 누구일까요? 놀랍게도 어린이 성도였습니다. 1893년 6살 때 저 경상도 밀양에서부터 홀로 걸어서 전라도 고부 객망리로 상제님을 찾아왔던 소년 성도 백복남입니다.
 
 『증산도 도전(道典)』에는 백복남 성도에 대한 신비롭고도 흥미진진한 얘기가 실려 있습니다.
 
 우선『증산도 도전』1편 40장을 보면, 무자(戊子, 1888년)생백인수 (白仁秀) 성도가 나옵니다. 상제님이 신미(辛未, 1871년)생이시니 17년의 차이가 납니다. 복남이란 이름은 6살 때 상제님을 처음 뵙고 난 후 상제님이 친히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인수는 날 때부터 영이 그지없이 밝아 8개월 때부터 신안이 열리기 시작하더니 세 살에 이르러서는 만물의 속을 환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니라. (道典1:40:2)
 
 하루는 천지에서 밝은 영이 내리며 어떤 분의 모습이 보이는 가운데 선어(仙語)가 들리기를“저 분이 너의 아버지이니 가서 뵈어라.”하니라. 인수가 여섯 살 되던 계사(癸巳: 道紀23, 1893)년에 천지 기운이 인도하는대로 고부까지 가게 되거늘 마침내 그곳에서 증산을 뵈니 순간 천지가 광명으로 가득 차 눈을 뜨고 마주 대할 수가 없는지라. (1:41:3∼5)
 
 인수가 아랑곳하지 않고 증산의 뒤를 따르매 한두 달 후 복남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시고 따를 것을 허락하시니라. (1:41:8)
 
 증산도 도전의 이 성구를 통해 복남은 태어날 때부터 영(靈)이 밝은 아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영적(靈的) 존재입니다. 천지만물의 이면은 영(靈)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물질문명이 화려하게 발달한 오늘날, 사람의 영성은 퇴화하여 스스로가 영적 존재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어린 복남은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천지의 밝은 영을 따라 천지기운이 인도하는 대로 스스로 상제님을 찾아왔습니다. 그 때 복남의 나이는 6살. 지금으로 말하면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아주 어린 나이였습니다. 그 어린 소년이 경상도 땅에서 전라도 땅까지 처음 가보는 길일 터인데, 상제님을 찾아갔다는 사실은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상제님은 복남이라 이름지어 주시고 추종을 허락하셨습니다. ‘복남’이 어떤 뜻인지『도전』에는 한자(漢字)가 나와 있질 않아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 동네에서 남자아이의 보통 이름으로 복동(福童)이가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복남(福男)이 아닐까도 생각해 봅니다만 그 외에도 더욱 깊고 심오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상제님과 복남이! 상제님께서 그 어떤 성도보다도 먼저 추종을 허락하신 소년 성도 복남, 여기에는 어떤 천지공사의 비밀이 담겨 있는 것일까요? 상제님은 복남을 어떻게 대하셨는지 다음 성구를 통해 미루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증산상제님께서는 항상 복남을 데리고 다니시는데 복남이 어리광을 부리며 무엇을 사 달라고 하면 잘 사 주시고 평소 성도들에게는 엄하게 하시나 어린 복남에게는‘아버지’라 부르게 하시며 친아들과 같이 사랑하시어 업어 주시고 가르쳐 주시니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성도들에게 복남을 가리키시며 이르시기를“얘는 내가 데리고 나온 아들이다.”하시니라. (道典3:3:5∼7)
 
 
 사람은 오직 하나뿐이더라
 『증산도 도전』1편 75장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상제님 성수30세, 백복남 성도 13세일 때 상제님께서 복남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하루는 증산께서 복남을 데리고 어디를 가시는데 손가락 두 마디만 한 머리카락 한 올을 복남에게 주시고 수백 명이 모인 번잡한 곳을 가리키며 말씀하시기를“저기 사람이 많으니 이것으로 비춰 봐라.”하시니라. 이에 복남이 말씀을 좇아 눈에 머리카락을 갖다 대고 사람들을 비춰 보니,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개, 돼지를 비롯한 온갖 짐승으로 보이고 그중에 사람은 오직 한 명뿐이더라. 이윽고 증산께서“다 봤냐?”하시더니 머리카락을 도로 뺏으시어 불태우시니라. (道典1:75:1∼5)
 
 조화(造化)의 극치를 보여주는 성구입니다. 『도전』을 보면 상제님의 이런 무궁무궁한 조화의 권능이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들을 머리카락으로 비추어 보았습니다. 그러니 상제님이 주신 머리카락이 어떤 기준, 잣대가 되는 것입니다. 겉으로 볼 때는 다 사람이었지만 그걸 갖다 대고 보니까 사람이 아니라 개, 돼지를 비롯한 온갖 짐승으로 보였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의 형상을 가지고 있지만 실지로 그가 하는 생각과 행위는 사람이 아니고 개, 짐승, 돼지였다는 것입니다.
 
 『증산도 도전』6편 33장, 11편 61장, 11편 91장에도 바로 이 ‘사람’에 대한 상제님과 태모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상제님 일꾼들이라면 이 성구들을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6편 33장을 보겠습니다. 1절에 보면
 
 하루는 증산 상제님께서 공사를 보시다가 일꾼이 없음을 한탄하시며“사람이 없다. 사람이 없다.”하시더니…
 
 물론 이것은 1편 75장과는 조금 다르죠. 천지 일꾼이 없다는 그런 말씀이잖아요. 2절에 보면
 
 내성을 보시고“갈보야, 칠보야! 짧달막한 네가 있구나!”하시니라.
 
 여기서 안내성을 보시고‘네가 있구나’라고 말씀하신 것은, 성사재인(成事在人)으로 볼 때는 일편단심으로 천지 일을 추진하시는 도운의 지도자를 지칭하신 것입니다.
 
 『도전』11편 61장의 태모님 말씀을 보겠습니다. 역시 1편 75장의 상제님 말씀과 연결시켜 볼 수 있는 성구입니다.
 
 “너 오다가 사람 봤냐?”“무슨 사람 말씀입니까?”
 “야, 이놈아! 사람 말이다, 사람!”이어 말씀하시기를 “사람, 사람, 사람 없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참으로 사람이 없구나.”하시며 크게 탄식하시니라. (道典11:61:1∼5)
 
 상제님의 천하사는 선천 5만년 역사를 매듭지으면서 천지가 인간농사 지은 인간 씨종자를 추리는 것입니다. 여기서‘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천지가 5만년 농사지은 사람 중에서 진짜 참사람, 천심 가진 사람입니다. 이 말씀은“지금은 하늘이 세상에서 천심(天心) 가진 자를 구하는 때니라.”(8:20:1) 이런 말씀과 통합니다.
 
 『증산도 도전』11편 91장을 보면 매우 충격적인 말씀이 나옵니다.
 
 치성 때가 되면 항상“사람이 없어서…, 사람이 없어서….”하시니라. “우리 집에 검불 참 많이 모아다 놨구나!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흰데기 하나 없구나. 너희들 중에서는 종자 하나 건지기 힘들다.” (道典11:91:1,6~7)
 
 이 말씀들을 서로 연결시켜 보면 종도사님께서 내리신 다음 말씀이 생각납니다.
 
 “사람 인(人)자 여섯을 써 놓고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느냐? … 사람이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은 사람 다워야 사람이다.”
 
 한편으론“우리는 냉혈동물이 아니라 온혈동물이다.”하신 말씀도 생각납니다. 종도사님께서는 일평생 외길인생으로 천지사업을 해오셨습니다. 그리고 3변 증산도 도운의 종정님께서도 역시 청춘과 젊음을 다 바치시며 천지사업을 하고 계십니다.
 
 
 나를 아버지라 불러라
 백복남 성도님에 대한 성구를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도전』1편 75장 6절에 보면 신축(辛丑, 1901)년 상제님께서 복남에게“집에 얼마동안 다녀와라.”하면서 밀양으로 보내십니다. 7절에 보면 복남이 집으로 돌아가서 홀어머니의 뜻을 따라 열네 살에 장가를 들게 되었으나 신부가 한 해를 넘기지 못하고 죽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후 복남이 고향에 머물면서도 행여나 상제님께서 말없이 또 길을 떠나시지 않을까 하여 예닐곱 달 만에 다시 객망리로 돌아옵니다.
 
 이 구절을 보면서 증산 상제님께서 임인(壬寅, 1902)년에 수석성도 김형렬을 만나 본격적으로 천지공사를 행하셨지만, 그 이전에 이미 상제님 고부 본댁에서 상제님을 모신 소년 성도 복남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수석성도인 김형렬 성도보다도 더 먼저 상제님을 모신 백복남 성도에게는 과연 어떤 도수를 붙였을까요? 1편 72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바로‘아들 도수’입니다.
 
 증산께서 천하를 유력하실 때 어린 복남이 자주 봇짐을 지고 따르거늘 복남이 힘들다 하면 업어 주시더니 하루는 복남이“다리가 아파요, 선생님.”하거늘 증산께서 복남의 머리를 쓰다듬으시며“너 앞으로는 선생님이라 하지 말고 나를 아버지라고 불러라.”하시니라. (道典1:72:4∼5)
 
 그러면‘아들 도수’란 무엇일까요? 이 아들 도수와 직결되는 말씀으로“천륜으로 우주일가(宇宙一家)니라.”(4:29:1)는 말씀이 있습니다. 천하사의 매듭이 어떻게 지어진다는 것을 온전히 함축하고 있는 귀중한 말씀입니다. 천륜을 바탕으로 선천 상극의 시대를 마감하고 후천 상생의 새 세상을 연다는 말씀입니다. 이‘천륜 도수’가 다른 말로 아들 도수입니다. 아들이란 무엇일까요? 아들은 한마디로 아버지의 사업과 혈통을 이어나가는 진정한 후계자입니다.
 
 상제님은 이러한 천륜 도수, 아들 도수를 백복남 성도에게 붙이셨으며, 그를 6살 때 부르시어 객망리로 오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임인(壬寅, 1902)년 천지공사의 도문을 열기 9년 전의 일입니다.
 
 6살의 백복남 성도가 상제님을 뵙고 추종을 시작한 다음 해인 갑오(甲午, 1894)년 이 땅에는 엄청난 피바람의 전화(戰禍)가 일어납니다. 바로 갑오동학혁명입니다. 상제님과 복남은 이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후일 도문에 들어올 성도들을 살리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도전』1편을 보면 상제님께서는 안필성과 김형렬 성도를 살리시고, 복남은 16세의 나이에 전투에 참가한 문남용(후일의 문공신 성도)에 큰 충격을 주어 동학군 대열에서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오게 합니다.(백복남 성도 下편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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