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도 가르침의 핵심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을 말하면 보은(報恩), 해원(解寃), 상생(相生)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 해원(解寃)은 ‘원한을 풀어버리라’는 말인데, 이 해원이 증산도 가르침의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기독교에서는 2000년이나 사랑을 외쳤습니다. 불교에서는 자그마치 3000년이나 자비를 부르짖었구요. 그런데 왜 이 세상이 이 모양일까요? 왜 사랑이나 자비가 아직도 이 세상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인간은 전쟁을 일삼고 또 서로서로 속이면서 살아갈까요?
상제님께서 그 해답이 바로 원한의 문제 때문이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가슴속 깊은 곳에 원과 한이 맺히고 쌓여 있는데, 어떻게 서로 사랑을 할 수 있겠습니까?
증산 상제님은 단순히 도덕적인 교화만을 하신 게 아니라, 인류를 쪄누르고 있는 원한을 실제로 풀어버리는 그런 일을 하셨습니다. 이게 바로 천지공사(天地公事)죠. 이건 나중에 자세히 말씀드리죠.
여하튼 증산 상제님은 무엇보다 먼저 원한을 끌러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전 2편 16장 1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 이 때는 해원(解寃)시대이니라. (道典 2:16:1)]]
이 원한이 해소되면, 그 다음에는 서로 사랑하지 말라고 해도 저절로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원한이 끌러지면 부처님이 말씀하신 자비가 샘물처럼 솟아나게 됩니다.

그러면 왜 인간은 원한을 맺을 수밖에 없을까요? 이런 근본적인 게 궁금하시죠?
그 해답이 바로 이 우주일년 도표에 나와 있습니다. 우주 봄 여름철은 상극시대거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원한이 맺히는 거예요. 천리가, 우주 자연섭리 자체가 상극으로 기울어져 언발란스(불균형) 되어 있으니까, 인간도 힘센 사람 약한 사람이 있고, 부자가 있고 가난한 사람이 있고, 고통을 주는 사람이 있고 고통받는 사람이 생겨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원한이 맺힐 수밖에 없는 거죠.
비유를 하나 들어볼까요. 한 여름철이 되면 무척 덥죠. 더우면 사람이 옷을 벗게 되어 있어요. 이건 불교인이든 기독교인이든, 무신론자든 유신론자든, 누구나 다 그렇죠. 더우면 옷 벗는게, 인간성이나 신앙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하등의 관계가 없어요.
이와 마찬가지로 선천에는 원한이 맺힐 수밖에 없어요. 선천 즉 우주의 봄 여름철에는 음양의 균형이 맞지 않아요. 음 기운보다 양 기운이 더 많아요. 그래서 남는 양 기운으로 만물을 분열시키고 성장시키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원한이 맺히는 거예요.
그런데 기존종교는 이런 근원적인 문제는 아예 언급조차 안 했어요. 그러고는 인간에게 도덕적으로만 착해지라고만 한 거죠. 근본 문제는 하늘 땅에 있는데, 사람에게만 ‘사랑하라, 자비를 베풀어라’ 그러니 문제가 해결될 턱이 없는거죠.